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2016)는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여 독창적인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영화 속 미장센, 소품, 대사, 그리고 인물들의 행동에는 숨겨진 의미들이 가득하며, 이를 해석하면 영화의 깊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아가씨’ 속 주요 상징과 그 의미를 분석해 본다.
이중 구조와 거울 – 신분과 정체성의 경계
‘아가씨’는 영화의 전개 방식뿐만 아니라 화면 속 요소들에서도 ‘이중성’을 강조한다.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거울이다.
영화 속에서 거울은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이는 인물들의 진짜 정체성과 가짜 정체성이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숙희(김태리)가 히데코(김민희)의 옷을 입고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녀가 단순한 하녀가 아니라, 점차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대로 히데코는 거울을 통해 자신이 감옥 같은 저택에 갇혀 있음을 자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영화는 이야기의 1부와 2부가 서로 대칭을 이루는 구조를 갖고 있다. 숙희의 시점에서 본 이야기와 히데코의 시점에서 본 이야기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게 되면서, 영화는 한 가지 사건을 두 개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서사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영화 전체가 ‘이중성’과 ‘반전’을 기반으로 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손가락과 장갑 – 속박과 해방의 의미
이 영화에서 손가락과 손을 강조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중요한 상징적 요소다.
히데코는 숙희에게 손가락을 깨물라고 하거나, 장갑을 낀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된 상태에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백작(하정우)과 이모부(조진웅) 앞에서는 장갑을 낀 채 손을 내미는 반면, 숙희와 함께 있을 때는 맨손을 드러낸다. 이는 그녀가 숙희와 함께할 때만이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히데코가 숙희의 손가락을 물어뜯는 장면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다. 이는 억압받던 히데코가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통제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일본을 떠나면서 장갑을 벗고 자유롭게 손을 맞잡는 장면은, 이들이 더 이상 속박되지 않고 진정한 해방을 맞이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책과 낭독 장면 – 성적 대상화와 여성의 저항
‘아가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이모부의 서재와 그 안의 책들이다. 이모부는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으며, 낭독회를 통해 자신의 왜곡된 욕망을 충족한다. 히데코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스스로도 ‘대상화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숙희를 만나면서 이러한 생각이 변하기 시작한다.
책 자체는 ‘지식’의 상징이지만, 이모부의 서재에 있는 책들은 오히려 여성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쓰인다. 히데코가 읽어야 하는 문학 작품들은 모두 남성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며, 그녀는 이를 거부할 자유가 없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히데코는 더 이상 남성을 위한 낭독을 하지 않고, 그 책들을 찢어버린다. 이는 그녀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숙희가 처음에는 히데코를 속이려 했지만, 결국 그녀를 돕게 되는 과정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숙희는 처음에는 돈을 위해 움직였지만, 히데코가 처한 현실을 깨닫고 연대하게 된다. 이는 여성들이 서로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하고 저항할 때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론: ‘아가씨’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이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신분과 정체성, 여성의 억압과 해방, 그리고 사회적 권력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거울과 이중 구조를 활용한 연출, 손과 장갑을 통한 속박과 자유의 상징, 그리고 책과 낭독회를 통한 성적 대상화와 저항의 메시지까지, 영화 속에는 수많은 은유와 상징이 숨겨져 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새로운 의미가 보이는 ‘아가씨’, 그 깊이를 이해하며 감상하면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